정선 가리왕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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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아리랑 유래

    • 지정번호 :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호
    • 지정일 : 1971년 12월 16일
    • 소재지 :정선군 일원

    우리나라 영서·영동지방에 분포(分布)되어 옛부터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이 고장 민요 정선(旌善) 아리랑은 일명 아라리라 부르고 있다. 정선아리랑이 이 고장에 널리 불리워지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년 전인 조선조 초기(朝鮮 初期)라 전한다.

    당시 고려 왕조를 섬기던 선비들 가운데 불사이군(不事二君)으로 충성을 다짐하며 송도(松都)에서 은신 하다가 정선 (지금의 남면 거칠현동 居七賢洞)으로 은거지를 옮기어 일생 동안 산 나물을 뜯어 먹고 생활하면서 지난날에 모시던 임금을 사모하고 충절(忠節)을 맹세하여 입지 시절의 회상과 가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곁들여 고난을 겪어야 하는 심정(心情)을 한시로 읊은 것이 지금에 정선 아리랑 가사로 인용된 것이 많다.

    그때의 선비들은 이러한 비통(悲痛)한 심정을 한시(漢詩)로 지어 율창(律唱)으로 부르던 것을 지방의 선비들이 듣고 한시를 이해 못하는 사람들에게 풀이하여 알려 주면서 지방에 구전되던 토착요에 감정을 살려 부른 것이 오늘에 전하여지고 있는 아리랑 가락이며. 그 후 사화(士禍)로 낙향한 선비들과 불우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애창하였고 전란과 폭정시(暴政時)에 고달픈 민성(民聲)을 푸념하며 내려오다가 『아리랑. 아리랑』하는 음율(후렴구)을 붙여 부르게 된 것은 조선조 후기 (또는 경복궁 중수시)라고 한다.

    한일 합방 후부터 일제 말엽까지에는 나라없는 민족(民族)의 서러움과 울분을 애절한 가락에 실어 스스로를 달래 왔었다. 일제를 거치는 동안 사상(思想)이 담긴 노래는 탄압(彈壓)됨에 따라 애정과 남·여 관계의 정한(情恨)을 소재로 한 새로운 노래가 많이 불리어 졌으며, 예로부터 전하여 지는 노래와 함께 오늘날 우리 나라의 독특한 가락을 지닌 민요(民謠)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정선아리랑 특색

    현재 채록된 정선 아리랑은 생활편 317곡(27%), 인간 관계편 347곡(29%), 이성편 136곡(12%), 환경편 157곡(14%), 기타 185곡(16%)총 1,200여수가 발굴 전해지고 있다. 창 기능보유자로는 최봉출·유영란·김병하 씨가, 전수교육 보조자로는 김남기·김형조·김길자 씨가, 전수장학생으로는 홍동주·신기선·정도진·전금택·배귀연, 김순덕씨가 일반 전수자로는 박봉석·이승열·이순옥 등이 있다. 이들은 아리랑의 폭넓은 전승 보급을 위하여 활동하며 이들이 전수회를 구성 매주 수요일 정선 문화예술회관에서 개강하는 전수교실 참여 및 관내 초·중·고등학교를 대상으로 활발한 전수활동을 하고 있다.


    정선아리랑 특색

    • 첫째, 이 민요는 오래 전까지 아라리로 불리워 왔으며 그 가락은 구슬프고 구성진 곡조를 지니고 있다.
    • 둘쨰, 다른 민요와 같이 한가지의 일이나 하나만의 전설을 소재로 하여 부른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시대(時代)의 흐름에 따라 인간상을 노래한 것이다.
    • 셋째, 그때 그때의 지닌 감정을 속임 없이 전래(傳來)의 가락에 맞추어 부름으로써 가사(歌詞)가 많다.
    • 넷째, 합창이 아니고 뜻이 통하는 노래를 서로 주고받으며 부르고 혹 후렴을 달아서 합창하는 예도 있다.
    • 다섯쨰, 자연과 인생을 비유하여 노래한 것과 진리(眞理)를 노래한 것이 많다.
    • 여섯째, 율창으로 부르던 한시(漢詩)는 전하지 않고 풀이되어 부르던 노래만 전한다.
    • 일곱째, 낙향(落鄕) 선비들에 의해 불려진 노래는 한시가 인용된 것이다.
    • 여덟쨰, 장소를 가려서 동년배(同年輩)들 끼리만 부르는 외설적인 노래도 있다.
    • 아홉째, 한문을 숭상(崇尙)하던 지난 날이었기에 체계적으로 남겨진 기록(紀錄)이 없다.
    • 열번째, 다른 지방(地方)으로 흘러 나간 정선아리랑의 가락은 많은 변천을 가져오며 그 지방의 아리랑으로 지금도 흘러퍼지고 있다.